이유 없이 전화 안받아 ‘골치’ 돌연 마음 바꾸는 지원자도 밉고 경력 정확한지 확인도 해야 하고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을 맞춘다는 것은 ‘연애’와 같은 일
‘ㄱ씨를 해볼까, ㄴ씨도 괜찮고, ㄷ씨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니다 ㄹ씨가 있었지.’
책상 위 이력서 뭉치를 뒤적였다. ‘ㄹ씨
것이 없네. 어디갔지.’ 갑자기 시계 바늘이 휙휙 돌기 시작한다. ‘내일까지 고객사에 추천 리스트를 보내야 하는데….’ 고개를 드니
해가 뜨고 있다. ‘아, 벌써.’ 등줄기에 식은 땀은 흐르는데 이력서는 온데간데 없다. ‘어디 갔어.’ 손을 마구 흔들었다.
꿈이었다. 하지만 곱씹을
시간이 없다. 헤드헌터인 나는 오늘도 정신없다. 어제 1시간 동안 설득한 지원자의 이력서가 들어왔는지 아침에 이메일을 확인해야 하고, 회사를 옮기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마음을 바꾼 지원자에게 오전에 전화도 해야 한다. 낮 12시에는 이직을 권할 사람과 점심 약속이 있다. 오후엔 새로운 일을
맡기겠다는 고객사와 회의도 있다. 그 중 가장 골치 아픈 건 전화를 안받는 ㅁ씨. 고객사가 요청한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인 것 같아 점찍었는데,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
‘띠리링~, 띠리링~’ 신호음만 여전히 울린다. “전화 좀 받아라. 쫌” 옆
직원까지 들리게 혼잣말이 나온다. 요즘은 덜하지만, 보통
직장인들은 헤드헌터 전화를 꺼리는 경우가 아직 많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되는데, 전화를 안받는 다른 사정이 있는지 몰라 전화를 계속하게 된다.
회사를 옮기기로 하기 전날, 갑자기
마음을 바꾼 지원자도 밉기는 마찬가지다. 이 지원자는 전화를 걸지도 않고 이메일을 보내지도 않고 ‘딸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마음을
바꿨다’고 보냈다. 통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를 기다린 기업과 헤드헌터에게는 충격을 주는 일이다. ‘왜 이리
거절하는 노하우나 방법을 모르지?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데….’
옆팀 상무님은 “나이가 30~40대여도 이렇게 처리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너무 신경쓰지
마라”고 위로해줬지만, 이 지원자는 그냥 놔둘 수 없다. ‘블랙리스트’행이다.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다음에 더 좋은 자리가 나더라도 그를 추천하긴 어렵다. 물론 지원자의 기술만 노리고 사람을
데려오라는 ‘블랙리스트’감 기업도 조심해야 한다. ‘연봉이 두배로 뛴다’는 등 감언이설을 하는 헤드헌터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전화 통화는 물건너가고, 일단
점심 약속 전까지 들어온 이력서들을 보기로 했다. ‘어라.’ 한
이력서를 보니, 지난번에 보내온 이력서와 경력이 조금 다르다. 한
대기업에서 일한 년수가 1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이거 체크해봐야겠는걸.’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학력·경력
위조 사건도 가끔 나오지만, 일반 직장인의 학력·경력 위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학교 졸업장도 가짜로 만들고 경력 증명서의 도장도 위조해서 찍는다. 지난번에는 평판 조회까지
잘 끝낸 사람인데, 알고보니 국외 기업에서 근무했다는 경험이 거짓으로 드러나서 크게 한숨을 쉰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평판 조회에 응한 사람도 지원자와 짠 사람이었다.
‘뛰는 위조서류 위에 나는 헤드헌터.’ 들려주고 싶다.
오늘 점심 약속은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 그룹의 직원과 만나는 자리다. 올해 초 이 기업에 다니던 꽤 괜찮은 사람들이 갑자기 이력서를 보내올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궁금하기도 했다. 요즘 뉴스를 보니 ‘부도 위험을 속여왔다. 회사를 움직인 실세가 이상하다’는 루머가 많다.
‘사람을 잘 뽑았어야지.’ 헤드헌터이다 보니 난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 국내 기업은
총수나 최고경영진의 인맥을 통해 임원을 뽑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인사 등 실무부서에선 이 임원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못하고 받을 수 밖에 없다. 헤드헌팅 업체에 맡기면, 그동안의 성과나 도덕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10명 정도의 추천 인원을
추려주는데, 그런 절차가 아예 없는 것이다.
헤드헌팅 업체가 ‘들러리’를 선 경우도 있다. 이른바 ‘낙하산’ 시이오. 이미 최고경영자로 누가 내정됐다는 소문은 들리지만, 지원자를 찾아야 한다.
물론 ‘부적절한 만남’도 있고 ‘낙하산’도 있지만,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을 맞춘다는 것은 ‘연애’와 같은 일이다. 다른 헤드헌팅 업체와 전쟁 같은 영입경쟁을 치른 뒤, 연봉이나 처우
등에 대해서 또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가 성공적이라면, 그
기업은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할 성과를 낼 인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인재를 낚으러 다시 전화를
돌려야한다.’